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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승호 뢰머 + 뢰머: 의 개인전, 2007 English

Küssende Mädchen, 2007, Oil on canvas, 100 x 130 cm

뢰머 + 뢰머: 의 개인전

뢰머 + 뢰머: Römer+Römer: Sense of Life 는 장벽이 사라진 베를린이라는 도시에서 공동 작업하는 부부작가의 작품으로부터 오늘의 도시 모습을 점검하는 계기를 마련 하고 있다. 그들이 직시하고 있는 도시속의 현재와 글로벌 사회에서의 문화가 우리의 미적 경험을 확장시키는 것과는 별개로,다문화에 익숙한 유럽과 어떻게 대화해야 하는지의 과제는 우리에게 주어진 숙제이다. 이 전시는 디지털 카메라로 도시문화의 다원주의를 관찰하고 이를 회화로 번역하는 러시아 줄신 작가 니나 뢰머 (Nina Römer)와 서독 출신 작가인 토어스텐 뢰머(Torsten Römer)의 행보를 축으로 한다.
통독 이후 급속하게 변화하고 있는 베를린의 도시풍경으로부터 다양한 삶의 방식을 증명해 보이는 이들 부부 작가는 세계를 직시하는 자신들만의 방법을 통해 우리에게 메시지를 던진다. 디지털 이미지와 회화적 이미지와의 관계,공동제작에 대한 이해와 해석의 척도, 글로벌 사회에서의 도시 문화와 도시 공간에서 이 사회가 창작 주체인 작가와 어떠한 방식과 방법으로 소통을 하고 있으며,나아가서 의미론적인 해석에서 벗어나 일상의 모티브와 사실 주의적 회화기법이 어떠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지 등 다양한 함의는 관객과의 조우를 기다 리고 있다.

뢰머뢰머의 작품은 글로벌 사회에서 문화의 다양성을 지시한다. 물론 이것이 다원주의 시대의 전형적 비평이자 작품에 다가가는 전형적인 접근방법이라고 간주하면 수월하겠지만,그들의 화면은 단순하게 작품의 내용을 분석하던 기존의 보편적인 해석방법에서 이탈 하여 글로벌 문맥에서 디지털 이미지와 회화의 이미지가 공동제작에서 상호간 어떠한 관계를 맺는지에 대한 관찰을 요구하여 용이하지 않다. 윤곽선과 외곽선이 없는 이미지가 주되게 나타나며 밝고 선명한 색으로 그려진 이미지가 화면에 가시화되기 때문이다. 기계적 도구로 포착된 현실과 현재의 이미지는 촉각적인 직접성이 상실된 도시풍경의 리얼리티로 번역 된다.
그들의 작품은 충격적이거나,특정한 모델이 출연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상징적이거나 알레고리적인 내용을 담고 있지 않다. 단지 그들은 “삶과 작업을 한 사람과 공유한다는 것은 꿈이다. 그렇기 때문에 물론 박자가 맞아야 하고 공동성이 생성되어야 하기 때문에 작업에 암께 감정이 이입되어야 한다. “¹ 라고 말하고 있듯이 디지털시대에 있어서 공동 생활과 공동 제작의 가능성을 기계적 이미지를 제작하는 방식으로 타진하고 있을 뿐이다.

공동작업 공동생활

니나와 토어스텐은 1998년부터 공동 작업을 하고 있는 부부 작가이다. 시간과 공간을 함께 공유한다는 것이 부부에게는 의례 당연한 것일 수 있으나 각기 서독 아헨과 러시아 모스크바 에서 성장한 그들이 공동 작업하고 공동 제작한 작품으로 세상에 나선다는 것은 흔한 일은 아닐 것이다.
뢰머 수 뢰머의 인연은 뒤셀도르프 미술대학교에서부터 이다. 요셉 보이스와 백남준 그리고 신표현주의 작가들이 재직한 뒤셀도르프 미술대학교는 이들에게 부부로서는 우연적인 만남을 가능하게 하였고 한편으로는 민주주의 시스템에서 나고 교육받은 토어스텐과 사회주의 시스템에서 자라난 니나가 국가와 이데올로기의 장벽을 직면하게 되는 장이기도 하였을 것이다. 동베를린 (Ost-Berlin)과 서베를린 (West-Berlin) 의 장벽이 무너진 이후에도 자본주의 문화와 사회주의 문화를 구분 짓는 오시셔야)와 외시(…근대라는 단어가 일상을 지배하는 이 도시의 삶은 오히려 그들에게 공동 제작의 원동력으로 작용한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시스템간의 분단된 역사로부터 각인된 일상의 차이는 그들 개인에게는 정체성의 문제로 받아들여지지만,민주주의 시스템을 채택한 국가와 사회주의 시스템을 채택한 국가에서 각기 다르게 해석해 온 미술의 역사와 그 흔적은 예술가에게는 당면한 과제로 여겨졌을 것이다.
스승이었던 펭크와 임멘도르프에게 미술이 동독과 서독이라는 이데올로기의 장벽을 넘어서 회화ᄃ 참여라는 새로운 도식으로 여겨졌다면,뢰머十뢰머에게는 미술이,그리고 삶과 예술의 긴장감이 역사적 잔재와 지역적 한계를 극복하는 기제가 된다는 가능성으로 줄발한다. 또빈’ 통독 이전 1979년 펭크와 임멘도르프가 분단된 국가의 현실을 단어와 이미지로 가시화하여 공동 제작의 기능성을 타진하였다면,뢰머十뢰머는 2003년 11닐 2일 22시〈독실과 러시아 키스퍼포먼스〉를 기획하고,모스크바와 베를린을 연결하는 장면을 사진기로 담아내며 150미에 달하는 벽화〈지하 자작나무숲〉를 제작하여 응수하고 있다.

뢰머우뢰머가 현재까지 진행하고 있는 공동 제작은 독일 현대미술의 전통에 속한다. 드레스 덴과 베를린에서 활동한 다리파 (Die Brücke) 그룹의 일원인 키르히너 (Ernst Ludwig Kirchner),헥켈 (Erich Heckel), 슈미트-로틀루프 (Karl Schmitt-Rotluff),펙슈타인 (Max Pechstein), 월러 (Otto Müller)는 공동으로 생활하면서 퇴폐 문화에 대〇아기도
하였다.
이들의 공동 생활은 전쟁과 산업화가 동반한 시대의 위협으로부터 창작의 근원을 보호하는 기제가 되었고 공동 제작은 나약한 창작의 자유를 역사적인 운명으로부터 보호하는 힘으로 작용하여 표현주의를 파생시켰다. 공동 생활과 작품 활동이 시대의 요청이었다면 표현주의는 독일의 화단을 국제적인 무대에 올려놓는 기회가 된다.
또한 시그마 폴케,안젤름 키퍼,마르쿠스 뤄퍼츠가 동서간의 정치적 분쟁을 미술의 역사에서 구체화 하였다면,바젤리츠와 펭크,임멘도르프는 분단된 국가의 현실을 회화 매체로 담아 내어 표현주의의 역사는 부활하고 공동체는 회화적 “역운”(하이데거 )이 된다.

뢰머+뢰 머의 공동작품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던진다. 1999년 이후 꾸준히 회화작품과 프로젝트를 공동으로 작업을 하는 그들이 독일의 표현주의 역사에 있어서 어디에 속하는지,그리고 1970—80년대 세계 화단을 지배했던 신표현주의 ᅵ세대 작가들의 작품들이 국제적인 논쟁(독일과 미국의 비평가들의 논쟁)의 대상이 되었던 이유가 무엇인가에 대하여 의혹을 던진다. 더더욱 베를린을 중심으로 활동한 신표현주의 2세대에게 논쟁의 의혹과 의문이 제외된 이유는 무엇인지에 대하여 고민하게 만든다.
그들이 토론을 통해 수천 장의 사진을 고르고 공동작업의 프로세스에서 미와 내용에 대하여 토론을 지속하는 한 그들은 독일의 전통적인 표현주의의 역사에 자리하게 될 것이다. 또한 이 역사가 그들에게는 또 하나의 새로운 짐이 될 것이다. 공동 생활이 창작의 근원인 그들 에게 던져준 어려운,그러나 가치 있는 과제일 것이다.

디지털매체ᄃ 회화매체

뢰머+뢰머의 공동 작품은 기술 매체와 회화 매체의 융합에서 출발한다. 그들은 도시인들의 일상적인 삶을 디지털 카메라로 찍고 컴퓨터로 재작업하여 기술매체를 공동 제작의 토대로 삼는다.
그들이 “디지털 사진이 매체(신문, 인터넷)와 개인적인 사용(개인적인 디지털사진)에 있어서 이미지세계를 변화시켰고 (…) 우리는 디지털 시대에서 이미지 세계에 대하여 문제를 제시 하고자 한다.”² 라고 밝히고 있듯이,그들의 작품은 디지털에 저장된 정보의 이미지이자 픽셀로 분할된 것인데 작품 제작에 있어서는 차갑거나 기계적이지 않도록 색질에 주의를 기한다. 완성된 작품은 오늘날 이미지 생산에 주축이 되고 있는 디지털 사진과 회화의 전통 적인 수작업 방식이 융합된 것이다.

그을은 아닐로그 사진과 필름, 비디오 럴크스크린의 역사에서 기술적 이미지 제작 방식이 어디에 위치하며 일상에서 이미지 생산의 수죽인 휴대폰, 디지털 가메라, 스캐너, 컴퓨터 등이 이화적 이미지 제작 방식에서 요구하는 것이 ㅜ지인가를 타진하면서 작가로서의 위치를 구색한다. 그들의 작품은 더출되지 않고 모델이 사용되지도 않은 것으로 거리를 활보하는 주시인의 눈에 비춰진 상면이 색의 음향으로 독해된 것이다.

그들의 작품은 니지털 카메라의 위치와 각도 그리고 거리를 여과 없이 드러낸다 반면에 하면의 이미지는 광택 없는 색면들로 층을 이루고 있다 사진기로 담아낸 일상적 이미지는 회화로 번역되는데 외화는 사신기의 이미지를 수용하고 사진은 회화적 이미지로 전환되어 회화와 사신기는 이미지 생산에 동등한 자격을 부여받는다. 구도와 사건 그리고 현장이 사진기의 결과물이라면 외곽선과 윤곽선이 불분명한 도시인들과 도시풍경은 회화적 미학에 속한다.

결과적으로 디지털 사진이 일상에서 이미지 제작의 주요 매체로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이 입승덜 문만 아니라, 작가는 기계적 이미지가 회화적 수작업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무엇이고 그리고 이미지 생산에 있어서 디지털 이미지가 어디까지 예술로서 가능한지에 대한 가능성을 지밀하게 타진하고 있다. 이러한 개념적이자 감각적인 미는 구상 회화가 다시 복귀하는데 사신이미지의 역할이 중요했다는 것과 이미지생산에 있어서 모티브를 찾아야 한다는 억압 으로부터 해방을 맞은 회화의 현실에 기저를 둔 것이다.

럴상적인 사건이나 시대적 현상을 여과 없이 드러낸다는 측면에서는 팝아트와 대중사진을 외화로 번역하는 게르하르트 리히터(Gerhard Richter) 와 비교는 되지만, 이미지 제작 방식 측 외곽선과 윤곽선이 불분명한 색면들의 이미지로 거리두기를 한다. 현대미술의 역사에서 회화와 사진의 융합관계가 어디까지 진행되고 있고, 동시에 전통적인 평면작품의 제작방식과 디지털 이미지의 생산에서 기술적 프로세스가 융합한다는 가능성으로 팝아트와 리히터로부터 거리두기는 분명해진다.

그들의 작품은 픽셀이 깨진 인물과 도시 풍경이 주를 이룬다. 전체적으로 그려진 이미지는 선명하지 않다. 리히터의 흐린 화면이 회화의 과제는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면, 색으로 뒤덮인 그들의 그림은 회화작품을 제작하는 프로세스는 무엇인가라고 답문하며 사진과의 관계에 있어서 새로운 가능성을 타진한다.

이는 회화적 이미지 생산의 방법이자 캔버스, 봇, 물감으로 이미지를 제작하던 전통적인 희화 방식에서 이탈하고자 하는 뢰머+뢰머의 고민이기도 하다. 부드럽고 연하게 칠해진 캔버스. 윤곽선이 없고 외곽선이 없는 이미지들이 기술적 프로세스에 부합한다면, 마르기전에 덧칠하는 픽셀 방식의 색칠 방법은 화가 개인의 필체를 넘어서 기계적 이미지 생산의 법직에 부응한다.
기계적 생산 법칙과 회화적 제작 방식은 미적 자극의 원천이 되었고, 전통적인 회화의 방식은 인물과 주변이 색으로 통일되고 색과 색의 층이 음향을 발산하는 가운데에서 이탈하게 된다. 디지털 이미지는 컴퓨터로 재작업 되어 화면의 전체적인 구도로 드러나고 픽셀 방식으로 재현된 사진 모티브는 기계적 이미지 생산의 프로세스에 동참하여 동반자가 되었다.
화면은 사진의 모티브가 색으로 통일을 이루고 다층적인 색으로 점철되어 창조자의 흔적을 남겨야 한다는 전통회화의 억압에서 이탈한다. 그리고 회화적 이미지의 제작과 기술적 이미지 의 생산이 상호간 보완 작용하여 후기인상주의자들의 색채연구에서 벗어난다. 그러므로 대상들의 경계가 정해지지 않은 원인이 외곽선의 상실에 있다. 픽셀방식으로 제삭된 화면으 이미지가 미적 자극의 핵심이자 이것이 제작하는 과정에서 생성한다”³ 라는 시멘 (Jeannot Simmen) 의 비평은 설득력이 있다.

뢰머+ 뢰머의 이미지 제작방식은 우리에게 다양한 시각을 제공한다. 그들은 사실적 회화의 이미지와 사진적 이미지의 용합을 추구하여 사신과 회화적 융합의 역사에 자리한다. 이러한 요구는 기계복제시대에 있어서 디지털 이미지와 회화적 이미지가 수작업과 수공적인 기계적 매체의 하이퍼 방식에서 소우한다는 가등성에 근거한다.
디지털 이미지가 예술직품의 프로세스와 동일하게 생성된다는 것은 개념적이다. 반면에 평범하고 일상적이고 식상한 도시의 풍경이 색의 음향으로 번역된다는 것은 감정의 미학에 속한다. 카메라로 직시한 실제의 세계는 회화 매체로 독해되어 사실적 회화의 전통을 이어 가는 베를린과 뒤셀도르프 미술대학교의 베허 (Becher) 부부와 게르하르트 리히터 그리고 토마스 루프 (Thomas Ruff) 로 이어지는 흐름과 합류한다.

베를린과 뒤셀도르프의 전통에 회화적 리얼리티=디지털 이미지라는 도식이 가능하게 하였 다면. 픽셀 = 수공적 얼룩이라는 새로운 도식이 회화와 사신의 융합의 역사에서 어떻게 자리 할 수 있는가에 대한 과제는 남아 있다. 이 과제는 부부 작가가 송동으로 회화의 리얼리티와 기술적 리얼리티가 어떠한 관계를 맺고 있는지에 대하여 공동 제작으로 가시화하는 한 구체화 될 것이다. 어렵고 힘든 노정이자, 그러나 그들만의 고유한 미적 경험이 승전보를 울리게 할 것이다.

일상적 이미지 = 회화적 일상

뢰머+ 뢰머의 회화 이미지는 디지털 카메라로 찍은 일상적인 모티브에 근거한다. 사진모티브 가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바로 여기, 그리고 현재를 직시하라고 권장한다면, 무엇이 화면의 내용이고 어떠한 양식이 창작의 근원인지에 대한 진지한 물음이 회화의 이미지가 된다. 어느 특정 개인도, 충격적인 사건도 없는 현재, 바로 지금 이순간이 회화적 기법으로 화면에 가시화된다. 이러한 디지털 이미지는 언론의 사진과는 대조적으로 제작자가 직시한 세계이고, 직시한 세계는 독일 전통의 표현주의와 베를린 전통의 사실주의적 회화양식에서 이탈하는 계기가 된다. 그들이 언급하는 “생각은 글로벌, 행동은 지역(Think global, act local)“ ⁴은 자아를 담아내던 역사에서 벗어나 거주와 창작의 근원인 도시공간과 글로벌 사회에 대한 생각으로부터 기인한다.

부부작가는 갤러리현대의 개인전에서 2007년 신작 12점을 선보인다. As Butterfly 에서 베를 린의 중심부를 나체로 활보하는 젊은이, ?Sense of Life! 의 뜨거운 태양을 피해 숲 속에서 젊음을 만찍하고 있는 베를린의 청년들, 그리고 Kissing Girls 에 등장하는, 해마다 여름에 베를린의 심장부에 개최되는 거리의 테크노 파티장에서 애정행각을 벌이는 동성연애자들에 이어서 스페인의 마드리드에서 사랑에 빠져 있는 한 쌍의 연인들을 묘사한 Kiss in Madrid
도 선을 보인다.

베를린의 문화가 다양하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는 듯 나무 그늘에서 한가롭게 점섬을 즐 기고 있는 좌파적인 성향의 젊은이들을 담은 In front of Bateau Ivre 와 독일의 수도 한 가 우데를 활보하며 일인 데모를 하고 있는 청년이 등장하는 City Pirate 과 청년들이 즐겨 찾 는 클럽으로 들어가는 젊은이, 그의 등에 새겨진 “나는 너희들을 믿을 수가 없다 라는 문구 를 읽을 수 있는 작품 I Don’t Believe You Guys 이번 전시에 포함된다.

다양한 언어가 작품제목에 반영되어 있듯이 뢰머+ 뢰머의 작품은 우리에게 다양한 베들린 의 도시풍경을 여과 없이 드러낸다. 베를린의 제과점을 표현한 Salut BkeryHasir Restaurant during the World Cup 에서의 월드컵을 환영하려는 듯 만국기가 휘날리는 터키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즐기고 있는 장면, 다 국적의 사람들이 수영장에서 여름을 즐기고 있는 Encounter in the Prinzenbad, 뜨거운 여름에 물을 뿌려 도시의 열기를 식히는 Water-jet in front of Pamukale-Spring 의 장면도 도시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것이다.
부부작가가 «흥미로운 아말감(Amalgam)» 이라고 부르는 이 도시의 풍경은 정치적인 견해 에 따라 긍정 혹은 부정으로 판단될 수도 있으나 중요한 것은 그들의 관심이 집중되는 연 재 이 순간의 장면이다. 다양한 문화가 만나고 부덧치며 생겨난 도시의 풍경, 이러한 그들 의 주 관심사가 전시에서 확인된다.

다양한 삶의 양식과 문화는 이들에게 창작 활동의 원동력이 되어 도시적 일상의 재현이 아 닌 창작의 즐거움을 전달하기에 충분하다. 판단을 하기 이전에 직시한 도시풍경은 그들의 화면에 가시화 되어 도시적 일상과 일상적 회화가 창작의 근원이 된다. 따라서 삶이 예술이 고, 행위가 예술작품이라는 모토가 그들의 화면에서 색과 이미지로 가시화 되었다.

회화로 번역된 디지털 이미지는 유럽 도시의 일상적인 장면들을 연상시킨다. 국제화의 물결 이 가장 빠르게 수용되는 도시의 정경은 침잠된 그림으로서가 아니라 관객의 눈앞에 통독 이후에 글로벌화 되어가는 베를린의 도시풍경으로 사실적으로 나타난다.
팝아트에서 예술성과 상품성의 긴장관계가 후기자본주의의 생산 법칙인 실크스크린으로 번 역되어 추구되었다면, 여기서는 글로벌 문맥에서 도시 풍경이 기계적인 제작 방식으로 전환 되어 문화적 일상과 일상적 회화로 독해된다. 대중문화에서 일상인으로서의 자아가 가능한 지에 대한 의문이 팝아트에서 제시되었다면, 뢰머수뢰머는 관찰자로서 도시공간에 직접 참 여하여 글로벌 문화는 실천적 미의 주체가 되어 한 발짝 더 나아간다. 도시 문화가 공동 생 활에 밀접히 관계하고 글로벌 문화가 예술이 된다는 가능성은 이미 팝아트의 산업적 이미 지의 제작방식과는 멀리 떨어져 있다.
따라서 도시 속의 삶은 국제 문화의 현재이고, 현재는 작품의 이미지를 해석하는 기준이 된 다. 현재가 기계적 이미지 생산의 프로세스에서 회화적 이미지 제작방식으로 차용되어 그둘 의 작풍은 국제적이다. 예술가로서의 노정과 일상인으로서의 여정이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창작의 근원과 작업의 원천이 일원화가 되어 “글로벌이 예술이고 지역적 행동이 예 술작풍’이라는 그들의 주장은 정당하다. 따라서 해석의 기준은 국제적 문화에 있고 이미지 제작방식은 글로벌 문화에 부흉한 것이다.

뢰머우뢰머는 글로벌 문화를 회화매체와 디지털 이미지와의 융합관계로 가시화 한다. 윤곽 선과 외곽선의 부재는 러시아와 독일, 아시아와 유럽. 아프리카와 중동. 터키와 아랍의 문화 가 혼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멀티문화, 그러나 경계나 불협화음이 아니라 혼재하 는 베를린의 현실이다. 회화로 번역된 디지털 이미지 생산의 프로세스는 다양한 문화가 혼 성되어 글로벌화 되어가는 도시의 현재를 담아내는 적절한 방법이 되었다.
예술의 리얼리티와 도시생활의 리얼리티는 긴장감을 유지하며 당론율 이룬다. 이는 일상과 삶의 일원화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대량생산의 시스템과 이미지 제작의 방식으로 독해되었 다는 사실율 관통한 부부작가의 쾌거가 아닌가 한다. 공동으로 제작하는 부부 작가의 창작 의 근원이 현재 바로 지금 이 순간에서 구체화되어 글로벌 문화는 작품 활동의 근원이 되 었고. 도시속의 생활은 국제화단에 그 모습을 드러내게 되었다.
서울 갤러리현대에서의 개인전 Römer+Römer: Sense of Life 에 전시되는 뢰머 十뢰머의 작품은 독일의 역사와 전통 그리고 회화와 사진. 글로벌 사회에서 국제도시와 이미지의 관 계를 당보하고 있다. 이 전시는 공동으로 제작되는 이미지가 지역의 역사성율 이해하는 기 준이 되었고 지금도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율 인정하게 한다. 현대미술에서 시작한 사진과 회화의 관계가 디지털 사진기의 픽셀三회화적 색의 얼룩이라는 새로운 도식율 가능하게 하 였다는 것도 지각할 수 있는 전시이다.
글로벌 문화의 관찰자인 그들이 창작의 원천율 공동제작에서 구체화 하듯이 서울의 현주소 가 그들에게 어떠한 모습으로 비추어질지 궁금증이 더해진다. 도시속의 글로벌 문화. 글로 벌속의 도시문화가 이번 전시에서 어떠한 역할과 미적 경험울 가능하게 하는지에 대하여 질문을 던진다. 특정한 인울도 아니고 그렇다고 특정한 장소도 아닌. 그러나 현재와 역사가 관통하는 도시속의 풍경이 그들의 회화작품에 가시화 되어 어디에서 어디까지가 누구의 손 에 의한 것인지 하는 궁금증으로 관객에게 가깝게 다가가고 있다.

철학박사 김승호

 

  1. 필자와의 이에일 인터뷰 내용 중에서 발췌, 2007. 5. 26
    2. 필자와의 이메일 인터뷰 내용 중에서 발췌. 2007. 5. 26
    3. Jeannot Simmen, Römer+Römer, Café Bistro Hauptstadt, Galerie Michael Schultz, 2006,전시도록의 서운에서 인용
    4. 필자와의 이메일 인터뷰 내용 중에서 발췌, 2007. 5.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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